반짝반짝 빛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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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성공인가 / 랠프 월도 애머슨

 

자주 그리고 많이 웃는 것

현명한 이에게 존경을 받고

아이들에게서 사랑을 받는 것

 

정직한 비평가의 찬사를 듣고

친구의 배반을 참아내는 것

아름다움을 식별할 줄 알며

다른 사람에게서 최선의 것을 발견하는 것

 

건강한 아이를 낳든

한 뙈기의 정원을 가꾸든

사회 환경을 개선하든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나는 것

 

자신이 한때 이곳에 살았음으로 해서

단 한 사람의 인생이라도 행복해지는 것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다

 

 

by chloe | 2007/02/01 03:57 | 시와 글 | 트랙백 | 덧글(3)
[펌]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미래-미래학 9. 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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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韓國民 必讀書 | 2007/01/23 (화)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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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은 미래에 경제학자들이 맞닥뜨리게 될 부 창출 시스템은 한계자원에서 벗어나 근본적으로 무한한 자원이자 경제성장의 주요 요인이 될 지식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현재 개인과 기업, 조직, 정부 등 우리 모두는 격렬하고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고 있다. 디지털 혁명의 가속화, 세계화의 물결과 그에 대한 저항, 중국의 부상과 에너지 및 환경 위기 등을 경험하고 있다. 앨빈 토플러는 이 책을 통해, 현재까지의 인간 역사를 부 창출 시스템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현재 우리가 겪고 있거나 경험할 것으로 예상되는 미래 현상에 대해 명쾌하게 설명한다. 저자는 부를 그 형태가 공유든 아니든 일종의 소유라고 정의한다.   토플러는 부의 미래를 형성하게 될 심층기반으로 시간, 공간과 지식을 제시한다. 이 세 가지 기반이 적절히 조화를 이룰 때 부의 창출은 폭발력을 가진다. 현재 우리는 세 가지 심층기반의 조화를 위해 나아가는 중이며, 이 과정에서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다고 분석한다.   첫 번째로 시간을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경우에 비동시화(de-synchronization)의 비효율성이 발생한다. 변화의 소용돌이와 그에 적응하지 못하는 제도, 기관, 조직 등의 저항으로 인해 변화의 속도가 불규칙해진다. 일례로 저자는 미국의 기업은 시속 100마일, 정부 관료조직과 규제기관은 25마일, 학교는 10마일, 세계기구는 5마일, 정치조직은 3마일, 그리고 마지막으로 법은 1마일의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비유한다. 각 조직의 속도가 동시화할수록 부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 있게 된다. 따라서 미래 도시는 ‘24/7(연중무휴)’ 영업방식이 주가 될 것으로 예상한다.   두 번째로 공간은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며, 세계 각국은 지식집약적이고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을 생산할 수 있는 노동력과 비즈니스를 위한 장소를 창출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아시아로 향하는 거대한 부의 이동이 이를 설명해 준다.   세 번째로 지식은 한계가 없는 무한한 자원으로, 네트워크 산업의 성장, 지식상품의 비경쟁성, 비획일화와 맞춤제품의 빠른 성장 등 기존 사회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저자는 프로슈밍(prosuming)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개인 또는 집단이 스스로 생산(PROduce)하면서 동시에 소비(conSUME)하는 행위가 프로슈밍이다. 건강한 삶을 위한 운동과 다이어트, 셀프서비스, DIY, 리눅스와 웹의 개발, 무료음악 파일 공유 등이 그 예이다. 프로슈밍을 통해 문화와 학습방식이 바뀌었을 뿐만 아니라 돈을 벌고, 사업을 하고, 경제가 운영되고, 부가 창출되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했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제3물결의 부 창출 시스템이 지각 변동을 가져와 중국이 부상하고, 일본과 유럽이 정체를 겪고 있다고 진단하면서 재도약을 위한 시사점을 제시한다. 제도적 변화가 사회적 전환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는 비동시화는 미래의 부를 다른 곳으로 이동시켜 미국마저도 위태롭게 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는 한국사회도 음미해 보아야 할 교훈이다.

최숙희/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by chloe | 2007/02/01 03:21 | 리뷰 | 트랙백(1) | 덧글(0)
[펌]구별짓기 / 부르디외
20세기 古典 6 - 부르디외의 ‘구별짓기’
조회 (19)
大韓國民 必讀書 | 2007/01/07 (일)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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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짓기’(La Distintion·1979)는 현대사회의 문화와 계급의 관계를 경험적인 연구와 독특한 이론으로 규명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1930~2002)의 역작 가운데 하나다. 부르디외는 파리고등사범학교(ENS) 출신의 사회학자로서 프랑스 최고의 지성을 상징하는 콜레주 드 프랑스(College de France)의 교수였다. 저자는 독창적인 사회문화이론가로서 30여권에 달하는 방대한 저서를 남겼다. 또한 68혁명세대 지식인으로서 말년에는 빈곤, 실업, 파업, 세계화 등 현실 문제에도 자주 개입하는 등 미국의 언어학자 노엄 촘스키와 닮은 데가 많은 학자다. 부르디외는 사후에 사르트르와 푸코에 이어 프랑스 지성사에 빛나는 세계적인 석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부르디외는 프랑스 정부의 지원을 받아 1970년대 말 전국민을 상대로 한 전국적인 조사 연구를 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음악, 미술, 의상 스타일, 실내장식, 스포츠, 요리, 영화 등 여러 분야에 걸쳐 프랑스인의 문화적 취향 및 생활양식이 밝혀지게 되었다. 부르디외의 관심은 이 같은 경험적 조사 연구의 결과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부르디외의 이론적 관심사는 사회에서 개인 및 집단의 문화적 취향은 무엇에 의해 어떻게 구성되는지, 또 문화가 사회구조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을 밝히는 것이었다. 부르디외는 이 책에서 특히 문화와 계급 간의 관계에 주목함으로써 책을 읽고 음악을 듣는 등의 문화적 행위가 때론 의식적이면서 동시에 무의식적으로 한 사람의 계급을 드러내고 있음을 밝히고 있다.

부르디외에게 있어 개인이 어떠한 문화적 취향을 갖고 어떤 종류의 문화를 소비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사회적 위치와 계급을 드러내는 실마리가 된다. 이러한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부르디외는 ‘사회공간으로서의 장(場)’ ‘문화자본’ ‘아비투스(habitus)’ 등의 개념을 사용한다.

먼저 ‘사회공간으로서의 장’이란 서로 얼마나 닮아 있는가 혹은 이질적인가에 따라 개개인이 서로 구별되는 공간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란 말처럼 상류층은 상류층끼리, 중산층은 중산층끼리 서로 구별된다. 특히 이러한 장에선 개개인이 정치, 경제, 문화와 같은 다양한 자본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사실상 서열이 매겨진다. 우리가 사는 사회가 곧 사회공간으로서의 장으로, 그 안에서 권력이나 돈을 얼마나 가지고 있느냐가 그 사람의 사회적 서열을 결정한다.

‘문화자본’은 부르디외가 말하는 여러 자본 가운데 하나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문화자본이란 가정환경, 가정교육과 같이 어려서부터 내면적으로 형성되기도 하고 클래식을 향유하고 문화·예술 소장품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처럼 오랫동안 관심과 노력을 기울일 때 형성되기도 한다. 또 학력과 같이 사회에서 제도적으로 인정해주는 문화자본도 있다. 예를 들어 학교에서 우수한 학업성적을 얻는다는 것은 훌륭한 문화자본을 획득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력은 문화자본의 대표적인 형태라 할 수 있다. 부르디외는 과거의 귀족과 하층민, 오늘날의 상류층과 하류층의 관계처럼 계급·계층 간에 불평등한 관계가 유지되는 것은 단지 경제력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자란 아이가 클래식 음악을 즐기기 어려운 것과 같이 이들 사이엔 문화자본 또한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고 주장하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준다.

개인의 취향과 문화소비 경향이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재능이나 기호가 다르기 때문만은 아니다. 출신계급(계층), 교육 등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이 이 같은 차이를 만드는 데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부르디외는 ‘아비투스’란 개념을 통해 이러한 문화적 불평등을 설명한다. ‘아비투스’란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특정한 취향을 갖거나 행동을 하게끔 만드는 기제이다. 이는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론 의식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특히 아비투스가 의식적으로 나타날 때는 자신을 남과 차별화시키기 위한 하나의 전략이 된다. 예를 들어 대중가요보다는 클래식 음악을, 또는 축구보다는 골프를 선호하는 것은 부유한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일 수도 있다. 부유한 가정환경이 무의식적으로 그러한 기호를 갖도록 만든 것이다.

▲ 부르디외의 1979년작 `구별짓기`
하지만 이는 자신이 속한 계급(계층)의 사회적, 문화적 차별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 즉 축구보다 골프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은근히 자신이 상류층에 속한다는 것을 과시하기 위한 전략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의도적 전략은 그것을 행하는 사람에게 내면화되어 있기 때문에 아주 자연스러운 듯이 보인다.

또 다른 예로 하층계급이 기름진 음식과 튼튼하고 실용적인 옷을 좋아하는 반면에, 상류층은 채소와 생선류의 식단과 고급 브랜드의 패션을 즐기는 것이 결코 개인적 차원의 취향 문제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자신을 남과 구별지으려는 계급(계층)적 차원의 구별이 있다. 축구와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부르디외는 계급(계층)에 따라 이토록 취향이 달라지는 것을 두고 하층계급의 ‘필수적 취향’과 상류층의 ‘사치스럽고 자유분방한 취향’이란 말로 구분한다.

사람들은 계급적 위치(상류층이냐 하류층이냐) 및 성향(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 취향이 비슷할수록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취향의 차이가 출신, 직업, 정치 성향의 차이로 나타날 수도 있다. 샴페인을 마시며 승마와 사냥, 골프를 즐기는 우익성향의 기업체 경영주와 맥주를 마시며 축구를 즐기는 좌익성향의 노동자가 친해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또 선호하는 음료, 스포츠, 정치성향 등은 각각의 계급(계층)의 사회적 위치와 상응한다. 이를 두고 문화와 계급이 상동구조(相同構造)를 이루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문화적 취향 혹은 문화 소비행태가 반드시 사회계급과 기계적이고 직접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닌 시대와 상황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거 귀족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승마, 펜싱, 테니스, 골프는 오늘날 더 이상 상류층만이 즐기는 배타적인 문화행위라고 할 수 없다. 고상한 취미나 스포츠가 중산층에 의해 채택될 때 상류층은 이를 버림으로써 이러한 고상한 취미는 더 이상 상류층만의 전유물이 아니게 된다. 역으로 하류층의 문화적 취향이 상류층에 전파될 수도 있다. 청바지는 과거 미국의 하류층 노동자들이 즐겨 입었지만 이제 명품 청바지의 경우 일부 상류층만 구입할 수 있는 아이템이 되었다.

‘구별짓기’는 현대인의 취향과 소비문화 현상에 대해 개념적 기초를 제공하는 이론서다. 일상생활에서의 문화 소비행위는 그 사람의 계층 혹은 계급을 나타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상류층은 자신을 사회적으로 구별짓기 위해 비싼 외제 승용차를 타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며 유명 브랜드의 비싼 옷을 입는다. 또 골프나 승마를 즐기며 해외휴양지에서 휴가를 보내는 문화생활을 즐긴다. 이런 문화생활은 개인적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상류층의 과시적이고 차별적 의도가 담긴 상징적인 행위일 수 있다. 부르디외의 문화이론은 이처럼 문화 속에 담긴 계급(계층)의 상징적인 행위를 잘 보여준다. 이러한 부르디외의 고찰은 현대인의 소비문화에 대한 마케팅 분석 및 전략 수립의 이론적 근거로도 이용되고 있다.

현택수/고려대 사회학과 교수
by chloe | 2007/02/01 03:18 | 리뷰 | 트랙백 | 덧글(0)
[펌]쾌도난마 한국경제 / 장하준, 정승일

한겨레 올해의 책 - 9. 쾌도난마 한국경제(장하준, 정승일)

 

大韓國民 必讀書 | 2005/12/30 (금) 13:33
 

흔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말은 부정적인 뜻으로 쓰인다. 상대방을 속이거나 골탕 먹이려는 수작 정도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즈음 부쩍 많이 출간되고 있는 대화집에 독자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까닭은, 기본적으로 서로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들이 충돌하며 펼칠 말의 향연을 만끽하고 싶기 때문일 터다. 거기에다 ‘격정대화’라는 꼬리표가 붙으면, 그 기대치는 더 극대화하게 마련이다. <쾌도난마 한국경제>에는 ‘장하준·정승일의 격정대화’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꼬일대로 꼬인 우리 경제의 문제점을 파헤치고 나름대로 속 시원한 처방전을 내놓을 거라 예상되는 제목에, 서로 의견이 다른 사람이 한판 붙었을 테니 흥미진진할 거라 짐작케 한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기대를 보기 좋게 배반한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전형적으로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뜻을 같이하는 사람이 대화를 나누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의 논리를 정면으로 맞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말을 받아 더 깊이있고 더 쉽게 풀어주고 있는 꼴이다. 그러니, 책을 읽고 나서 불쾌감이 일어나느냐 하면, 전혀 그렇지 않다. 그것이 이 책의 매력인 바 머릿속에서 빙빙 돌기만 하던 개념이 확실해지고,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눈이 뜨이고, 오랫동안 얹힌 속이 확 풀리는 듯하다.
 
이 책의 문제의식은 “왜 ~하면 할수록 ~해지는 걸까”라는 관용구로 요약할 수 있다. 왜 개혁을 하면 할수록 우리 경제의 종속성은 심화되는 것일까, 왜 재벌을 손보면 볼수록 외국자본만 이득을 얻는 것일까, 왜 수출이 늘어나는데 내수는 죽고 노동자는 직장에서 쫓겨나는 것일까 등속이 그것이다. 지은이들은 그 이유가 오늘의 정권 담당층이 신줏단지 모시듯 하는 신자유주의에 있다고 명토를 박는다. 신자유주의는 저투자·저성장·고용불안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는 금융자본주의가 기업경영 시스템을 장악한 것이 신자유주의니만큼 당연하다고 한다. 이 정도는 우리의 멱을 바짝 조여 오는 세계화라는 망령의 정체를 고민한 사람들에게는 새로울 것이 없다. 그러나 구체적 사례로 영국병을 분석하는 데 이르면, 바야흐로 ‘무림의 고수’를 만났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다.
 
누가 영국병을 일으킨 주범이 망국적인 노동운동이라 했던가. 과격한 노동운동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였으니, 금융자본이야말로 병원체다. 금융자본이 산업자본보다 힘이 세다보니 파운드화가 강세를 유지하게 되었고, 제조업체들은 경쟁력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신자유주의가 주주 민주주의의 다른 말이라는 사실에서 알 수 있듯, 기업들이 단기이익만 좇다보니 장기투자나 기업운영을 포기하게 되었다. 어디 이게 남의 나라에서나 볼 수 있는 현상이던가. 지금 이 나라가 돌아가는 꼴과 너무 흡사하지 않은가, 라고 지은이들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박정희다. 박정희 노선의 성공은 “민주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자유주의가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은 상당히 문제적이지만 설득력이 높다. 자본가들의 투자·소비·자본의 유출을 통제한, 반시장주의적이며 국가주도형 개발의 현재적 가치를 재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을 이처럼 돋을새김한 데는 전략적 차원의 발상이 끼어들어 있는 듯싶다. 시장에 정부가 개입할 때 비로소 신자유주의를 이겨낼 수 있다고 말하고 싶은 것이리라. 그러나 오늘을 위해 흔들어 깨운 유령 때문에 과거의 생채기가 다시 돋아났다. 노동자와 농민을 억압하지 않고 경제를 발전시킨 나라는 없었고 임금이 많이 올랐다는 데서 위로를 찾으라는 말은, 지난 시대의 희생자들을 모독하는 발언이다. ‘면죄부’를 함부로 남발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또 다른 문제는, 재벌이다. 재벌이 경제성장을 위한 시스템이었다는 주장부터 반론이 가능하다. 그리고 소액주주 운동 같은 시민단체의 활동이 외국투자자들과 금융자본에게만 이익을 준다는 분석 역시 논쟁을 유발한다. 또한 안기부 도청사건에서 볼 수 있듯 정치권력마저 장악하려는 재벌의 형태를 염두에 둔다면, 지은이들의 주장은 빛이 바랜다. 게다가 정책당국자들이 이 대목만 편의적이고 선택적으로 수용할 때 벌어질 일을 가상한다면 경계를 늦출 수 없다. 그러나 지은이들의 현실론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유럽식으로 재벌 시스템의 일부는 인정하되,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역할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은 ‘보수혁명’의 시대다. 지은이들의 말대로 “신자유주의는 과거에 민주주의로 인해 빼앗긴 권력을 되찾자는 이론”일 뿐이다. 그 권력을 되찾고자 하는 무리가 누구일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이제,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에서 벗어나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나서야 한다. 그것을 지은이들은 ‘사회주의적 시장경제’라 명명하고 있다. “시장과 공공성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가정 하에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개입을 긍정”하는 것이다. 이 주장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민주적인 정권일수록 (양극화를 해소하고, 일자리를 늘리고, 사회적 안정망을 확충하고, 민족자본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말이다.
 
일부러 좋은 책이 무엇인가 정의한다면, 읽고나서 지은이와 논쟁을 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책이라 할 수 있다. 굳이 무엇을 올해의 책으로 뽑아야 하는지 말해야 한다면, 우리 시대의 고민을 끌어안고 그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 ‘뜨거운’ 책이어야 한다고 할 수 있다.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보기 드물게 이 두 조건을 두루 만족시키고 있다.
 
이권우/도서평론가

 

by chloe | 2007/02/01 03:14 | 리뷰 | 트랙백 | 덧글(0)
만나야 할 사람/ 만나지 말아야 하는 사람
대학에 와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겪으면서 생각하게 된 것들이 있다.

1.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사랑받으려는 욕구로 인해 나 자신을 잃지 말 것.
2. 모든 사람들이 좋은 인연은 아니며, 그 중에는 나에게 해만 끼치는 악연이 있다는 것.
3. 악연을 잘라내는 행동이 절대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


성인이 되고, 연애를 하면서 나 자신이 어떤 사람과 엮일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고, 그로 인해 주로 생각하게 된 화두는 바로 "좋은 사람과 좋은 관계 유지하기"이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사람의 특징은 이렇다.

1. 좋은 사람과는 같이 있는 시간, 같이 있는 공간이 즐겁고, 평화롭고, 행복하며, 소통이 잘 된다.
2. 좋은 사람은 나 자신을 가치 있게 느끼게 해준다.
3. 좋은 사람은 인격적으로 본받을 만한 부분이 많다.

무엇보다도 나는 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 ^^ 그리고, 그러므로 나는 좋은 사람을 가려서 만날 자유와 권리와 의무가 있다. 나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나를 아껴주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내 인생을 반짝반짝 빛나게 해줄, 그리고 나로 인해 반짝반짝 빛날 누군가를 어서 만나고 싶다. *^^*



 
by chloe | 2007/02/01 03:02 | 단상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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